양봉업에 무슨 일이…농가 6년새 2만→3만가구 폭증, 생산량은 10분의1 토막 [스페셜리포트]

충남 아산과 천안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용와산 자락. 수박이 영글고 있는 밭 옆 공터에 수백 개의 벌통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17년째 양봉업을 하는 장춘호 씨(65)는 "한때 벌통을 500개까지 늘렸지만 벌꿀 수확량이 계속 감소해 지금은 300개 정도로 줄였다"며 "작년부터 벌꿀 흉작이 극심해 누가 벌통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공짜로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벌통 하나에서 아카시아(아까시나무)벌꿀 30㎏ 정도를 수확하는 게 일도 아니었는데 올해는 몇 ㎏도 안 될 정도"라고 토로했다. 장씨의 올해 양봉사업은 이제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벌꿀 생산의 70~80%를 차지하는 아카시아 벌꿀은 5월 한 달만 생산되며 밤꿀과 같은 다른 종류의 벌꿀들도 6월이면 생산이 거의 종료되기 때문이다. 양봉농가들은 이 두 달을 위해 나머지 10개월간 꿀벌을 정성 들여 기른다.

그런데 아카시아 벌꿀 생산량이 지난해 평년작(2017년) 대비 8%에 그친 데 이어 올해도 대략 40~45%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7~8월 약 두 달간 수확할 수 있는 야생화 벌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생산 물량이 워낙 미미해 꿀벌을 죽이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먹이 공급 수준에 그친다.

◆ 아카시아 등 밀원수(蜜源樹) 부족이 문제

"시골서 17년 양봉했지만 이런 흉작은 처음이네요."

우리나라의 대표 아카시아 벌꿀이 2년째 흉작인 가장 큰 이유는 아카시아가 급격하게 줄어든 탓이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산에 아카시아가 많은 이유는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림녹화 사업에서 주력 수종 중 하나로 아카시아를 선정한 영향이 크다. 그런데 산지가 도시와 도로, 공단 등으로 개발되면서 아카시아 군락지 자체가 계속해서 줄어든 데다 아카시아 수명이 40년 정도이다 보니 산림녹화 때 심었던 아카시아가 2000년대부터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산림청은 전국의 아카시아 면적이 2012년 5만5000㏊에서 2017년 2만6000㏊로 5년 새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파악했다.

양봉농가들은 산에 아카시아를 다시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원하지 않는 산주들이 많은 것이 걸림돌이다. 아카시아는 땅에 뿌리를 넓게 박는 것으로 유명하다. 뿌리가 주변으로 많이 뻗어 나가다 보니 다른 나무 생장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묫자리까지 침범하는 경우가 많아 배척되기 일쑤다.

최근 들어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극심한 벌꿀 흉작은 봄철 냉해 때문이었다. 아카시아 꽃대가 올라오는 4월에 냉해가 닥치면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올해는 5월이 문제였다. 김용래 한국양봉농협 조합장은 "아카시아꽃이 한창인 5월에는 낮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야 꿀도 많이 나고 꿀벌도 활동을 많이 하는데, 올해는 기온도 낮고 비도 많이 오는 바람에 꽃이 활짝 피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토종벌은 2010년 바이러스성 질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90%가량이 폐사해 현재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토종꿀 생산량은 극히 미미한 상황이다.

양봉농가들은 과거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를 버티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벌꿀 수확이 가능할 정도로 꽃 천지였다. 3월에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한 유채꽃이 곧이어 전라도로 상륙하고, 남부지방에서 5월 초부터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꽃은 충청도와 경기도로 연이어 북상했다. 아카시아꽃이 진 뒤에는 6월 초부터 때죽나무, 쥐똥나무 같은 야생화가 사방 천지에 피었고, 곧이어 밤꽃이 많은 꿀을 내줬다. 여름철에는 강원도에서 싸리꿀과 피나무꿀이 많이 났고, 9월엔 메밀꽃과 들깨꽃, 10월엔 향유까지 피고 나면 꿀벌들이 월동 준비에 들어갔다.

그래서 예전엔 이동 양봉이 주력이었다. 제주도에서 유채꿀을 딴 다음 벌통을 트럭에 싣고 전라도로 가서 아카시아 벌꿀을 따고 연달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로 옮겨가면서 벌꿀을 따는 방식이다. 지금도 이동 양봉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트럭 기름값에 인건비를 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 꽃가루 매개 경제적 가치, 꿀의 12배

벌꿀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양봉업이 찬밥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실 양봉산업의 가치는 단순히 벌꿀만으로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양봉산업이 환경과 농업, 경관 등에 미치는 역할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65%는 꽃가루(화분·花粉) 수정이 필요하다. 식물은 대개 수술과 암술이 따로 있는데, 땅에 고정돼 있는 만큼 자연적으로는 서로 만나 번식을 하기가 어렵다. 바람이 번식을 시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꿀벌이 다리를 이용해 수술의 화분을 암술로 옮겨줘야 수정이 된다. 식물이 꽃꿀(꽃이 품고 있는 달달한 용액)을 분비하는 이유도 번식을 위해 꿀벌을 유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토의 70% 가까이가 산지로 이뤄진 만큼 꿀벌 없이는 각종 식물의 번식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농업에서 역할이 두드러진다. 사과, 배, 참외, 수박, 호박 등 채소와 과일도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농부가 붓으로 일일이 인공수정을 해줄 수도 있지만 꿀벌이 하는 것이 수정률이 훨씬 높다.

우리나라의 벌꿀 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꿀벌의 화분 매개 역할에 따른 경제적 가치는 6조원(농촌경제연구원 추산) 정도로 평가된다. 화분 매개 가치가 12배 큰 셈이다. 이렇게 보면 축산업으로 분류되는 양봉업의 가치가 한우나 한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양봉산업은 벌꿀 이외에 프로폴리스와 로열젤리, 화분, 밀랍, 봉독 등 부가가치가 높은 다양한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프로폴리스는 벌집 안으로 바람이나 세균 등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틈새를 메우는 데 사용하는 물질로 꿀벌들이 가져온 수액과 타액, 효소 등을 뒤섞어 만든다. 꿀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벌집 안을 살균하는 데도 프로폴리스를 바른다. 양봉 전문가인 허주행 한국양봉농협 동물병원장은 "프로폴리스에는 플라보노이드라는 항산화, 항균 성분이 함유돼 있어 '천연 항생제'로 불린다"며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프로폴리스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로열젤리는 꿀벌들이 애벌레에게 주는 먹이로 어린 꿀벌의 머리 부분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만들어진다. 우유색을 띠고 있어 왕벌젖으로도 불린다. 꿀벌들은 일반 애벌레에게 이틀간, 여왕벌로 선택된 애벌레에게는 13일간 로열젤리를 먹인다. 같은 알에서 태어났는데도 여왕벌의 크기가 크고 일반 꿀벌보다 수명이 40배 긴 건 로열젤리 때문이다. 벌집의 재료인 밀랍은 천연 양초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은 물론 최근 들어서는 화장품과 의약품 원료로도 사용된다. 봉독은 의학적으로 혈압을 낮추거나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에 대한 논문이 보고됐고, 봉침은 치료용으로 사용되는데 최근 들어서는 가축에게 항생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된다.

◆ 양봉산업 살리자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꿀벌 밀집도 낮아서인지 도시가 시골보다 낫네요."

양봉산업이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이처럼 다양하다 보니 위기의 양봉산업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세계 꿀벌의 날을 맞아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맨몸에 꿀벌을 뒤집어쓴 채 사진을 찍은 퍼포먼스가 큰 관심을 끌었다. 그는 꿀벌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흘 전부터 샤워를 하지 않고 몸에는 꿀벌 유인 물질인 페로몬을 바른 채 18분간 촬영에 임했다. 졸리가 벌에 쏘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꿀벌의 생태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측은 "꿀벌 서식지가 줄어들고, 살충제와 진드기 영향으로 꿀벌 개체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며 행사 기획 배경을 밝혔다. 졸리는 "양봉은 환경과 농업,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산업"이라며 "생명을 유지하는 꽃가루 매개체를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과제"라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텃밭에서 직접 양봉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꽃가루 매개자 건강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정도로 양봉에 애착을 보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꿀을 채집하러 나간 벌들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않고 집단 폐사하는 벌집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 이슈가 되던 때였다.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작물 재배에 쓰인 농약이 집단 폐사의 큰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됐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꿀벌 개체 수는 약 40%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약이 양봉의 최대 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양봉산업은 수입 개방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2014년 타결된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42%이던 관세율이 15년간 매년 일정 비율씩 하락해 2029년이면 관세가 전면 철폐된다. 김 조합장은 "베트남산 벌꿀 가격은 국산 천연벌꿀의 5분의 1 수준이다 보니 자칫 국내 시장을 대거 내줄 가능성이 있다"며 "국산 벌꿀 시장이 축소되면 양봉산업이 위축되고, 꿀벌들의 화분 매개 등 다양한 기능도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전체 2만가구까지 줄었던 양봉농가 수가 귀농·귀촌·은퇴자들의 진입으로 2015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 2만9000가구에 달하는 것도 양봉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아카시아 면적 감소에 기상이변까지 겹치면서 꿀벌 생태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꿀벌 숫자는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의 꿀벌 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도시 양봉이 산지나 농촌 양봉에서보다 벌꿀 생산이 더 많이 되는 역설적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도심 내 빌딩 옥상에 설치된 벌통에서 나오는 벌꿀 양이 더 많다는 것이다. 도시양봉가로 서울 시내 20여 곳에서 벌통을 운영·관리하는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는 "작년과 올해 벌꿀 흉작이 극심하다고 하지만 벌통 하나당 꿀 생산량을 보면 도심 양봉장이 시골보다 2배 이상 많았다"며 "서울의 산과 공원에 생각보다 다양한 나무와 꽃이 많은 데다 시골 양봉장에 비해 꿀벌의 밀도가 낮은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양봉은 꿀벌을 이용해 벌꿀을 생산하는 작업을 통칭하는 말이다. 한 벌통에서 1마리의 여왕벌과 5만마리 정도의 일벌이 집단생활을 하는 꿀벌이 자신들이 먹기 위해 만들어 저장해 놓은 것이 바로 벌꿀이다. 꿀벌이 벌꿀을 생산하는 과정은 어떤 스마트공장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한 협업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꿀벌들은 각자 부여된 역할이 있다. 우선 외역벌(밖일벌)은 꽃으로 날아가 꽃꿀(꽃이 품고 있는 달달한 용액)을 자신의 몸에 저장한 뒤 벌통 안으로 갖고 들어온다. 내역벌(안일벌)은 벌통 안에서 벌집을 청소하고 알이 잘 부화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외역벌이나 내역벌은 모두 일벌(암벌)이다. 수벌은 일벌보다 몸집이 크지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왕벌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교미하는 역할만 한다. 여왕벌은 많게는 하루에 2000개의 알을 낳기도 한다.

내역벌들은 외역벌이 가져온 꽃꿀을 삼켰다 뱉었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몸에서 배출되는 효소와 섞는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꽃꿀이 숙성되며 점차 벌꿀로 변하게 된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대부분의 꽃이 지고 벌꿀 수확이 끝나면 양봉농가들은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이때 꿀벌들의 먹이로 설탕물을 사용한다. 꿀벌들이 사람이 가져간 꿀 대신에 설탕물을 먹고 겨울을 나는 것이다. 다시 봄이 돼 꿀벌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벌통에 남아 있는 설탕물을 빼줘야 하는데, 이때 나오는 설탕물이 바로 사양 꿀이다. 꿀벌들이 겨우내 먹었다 뱉었다 하면서 효소와 섞이는 만큼 처음에 넣었던 설탕물보다는 걸쭉하고 맛이 진하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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